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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지는 사이,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온 노량진 상점들 역시 하나 둘씩 폐업위기에 내몰렸다. 실제로 이날 수험생들이 점심을 먹는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 노량진 ‘맛집’으로 유명했던 주요 식당들의 점심 풍경은 예전보다 부쩍 한산한 모습이었다. 
늘 바깥까지 길게 줄이 늘어서있던 모 쌀국수 집도, 혼밥을 하는 수험생들로 가득 차 있던 패스트푸드점도 빈 공간이 손님들을 압도했고 컵밥거리 역시 예전의 활기를 잃은 채 약 30개 점포 중 12곳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공시촌 곳곳에 있는 독서실과 고시원 관계자들도 입을 모아 “예전에 비해 이용자들이 줄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공시촌의 현실을 부동산 업자 B씨는 “지축이 흔들린 것 같다”고 표현했다. 공무원 선발인원과 출원인원이 동시에 늘고 있는 요즘, 공시촌을 덮친 불황이 그만큼 당황스럽고 그 끝이 어디일지 예측도 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공무원의 인기와 더불어 변함없이 전성기를 누릴 것만 같았던 노량진 수험가, 그 곳의 균열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 뛰는 ‘실강’ 위에 나는 ‘인강’

노량진 소재 독서실에서 총무로 일하고 있는 군무원 수험생 A씨(28)는 그 균열의 원인으로 수험생들의 ‘니즈’ 변화를 지목했다. 예전만 하더라도 ‘인강’으로 공부를 할 경우 득보다 실이 크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요즘은 오히려 ‘인강’으로 공부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인식이 수험생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라는 설명이었다.
“제 주변에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지방이나 수도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친구들이 집에서 인강을 들으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심지어 노량진 인근에 사는 저조차도 실강 대신 인강으로 공부하면서 독서실을 다니고 있으니까요.”
그가 말하는 ‘인강’의 최대 장점은 효율성이다. 수업을 듣기 위해 긴 시간을 들여 대중교통을 타야 할 필요도, 강의실에서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미리 줄을 설 필요도 없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내 손과 눈앞에서 듣고 싶은 강의가 펼쳐지기에 금 쪽과도 같은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강의를 전부 듣지 않아도 된다. 수업 도중 수험생들의 잠을 깨우기 위한 강사들의 유머나 잡설이 이어지는 부분에선 과감히 이를 생략해도 되고 강의의 호흡이 느린 경우 배속을 빨리해 학습을 압축적으로 마칠 수 있다.

노량진에서 만난 교육행정직 수험생 B씨(25) 역시 노량진의 위기를 인강, 특히 모바일 강의에서 찾았다. 스마트폰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지 않았을 때만 하더라도 PC에 의존해 인강을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수험생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모바일 강의 콘텐츠가 일반화된 요즘, 굳이 강의를 듣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감수하고 노량진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가입자(증가율)는 ▲2013년-3,751만명(14.6%) ▲2014년-4,069만명(8.5%) ▲2015년-4,366만명(7.3%) ▲2016년-4,641만명(6.3%) ▲2017년-4,865만명(4.8%)으로 꾸준히 늘었고 2017년에는 전체 인구수 대비 94%의 스마트폰 보급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공무원 수험시장에서 ‘인강’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노량진 공시촌에 일찌감치 터를 잡은 주요 공무원 시험학원 관계자들 역시 인강의 무서운 성장세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노량진의 A학원 부원장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연령이 대부분 인강에 최적화돼 있는 세대인데다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인강과 달리 실강은 변화의 속도가 느리다”면서 “최근 노량진의 식대나 생활비가 확 오른 것이 사실인데, 수험생들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지지 않을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노량진 소재 B학원 관계자는 “정확한 매출의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근 4~5년간 인터넷 강의의 비중이 커진 것은 사실”이라며, “노량진 수험가가 활기를 잃은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편리하고 비용이 저렴하다는 인강 때문에 많은 수험생들이 실강에 등을 돌렸다”고 말했다. 

◆ 실강 수요자, ‘가성비’ 찾아 삼만리

한편, 부동산 업계에서 바라보는 침체의 원인은 수험가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사뭇 다르다.
부동산 업자 A씨는 “이미 인강은 예전부터 꾸준히 수요가 있었지만 완강률이 현저히 떨어져서 실강을 듣는 수험생들이 언제나 존재했다. 인강만으로는 근래 갑작스레 불어닥친 공시촌의 위기를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최근 주요 공무원 학원들을 중심으로 ‘관리형 독서실+강의’ 및 ‘기숙학원+강의’ 패키지가 등장한 것을 주원인으로 꼽았다. 
즉, 자기통제가 다소 어려운 인강 대신 철저한 지도․관리가 가능한 실강을 선호하는 수험생들이 공무원 학원들이 제공하는 독서실 및 기숙시설로 자리를 옮겼다는 얘기다.

관리형 독서실 및 기숙시설 패키지 상품의 최대 장점은 ‘가성비’다. 노량진에서 자취를 하면서 실강을 들으려면 수강료와 교재구입비, 숙식비, 독서실 이용비 등을 모두 따로 따로 해결해야 해 최소 150~200만원의 비용 지출을 감수해야 하지만, 기숙시설을 이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B공무원 기숙학원 관계자는 “기숙형 패키지 상품의 경우 200만원 초반 대에 거주 및 학습 공간은 물론, 3개월 종합반 강의와 식사까지 이용할 수 있어 노량진에서 실강을 들었던 상당수의 수험생들이 기숙학원 쪽으로 이동했다”고 귀띔했다.

관리형 독서실 역시 우수한 시설과 강의 콘텐츠 제공으로 공무원 수험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과거 독서실이 이용자의 ‘자율’ 학습공간을 제공하는데 그쳤다면, 최근의 관리형 독서실은 강의는 기본이고 모의시험과 학습스케줄 관리, 합격생 멘토와의 상담까지 제공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수험생들의 학습에 관여한다.
최근 공무원 학원에서 제공하고 있는 관리형 독서실을 이용 중이라고 밝힌 일반행정직 수험생 C씨(24)는 “공시촌에 있는 답답한 독서실보다 깨끗하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어서 집중도 잘되고 강의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 훨씬 이득인 것 같다”면서 “독서실에 입실하고 싶어하는 대기인원도 꽤 많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B공무원 기숙학원 관계자는 “인강은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뛰어난 소수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관리를 필요로 한다”면서 “관리가 원활한 실강의 장점은 살리되, 단점인 비용 지출을 줄이는 패키지 프로그램들을 공무원 학원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 역시 수험생들의 공시촌 이탈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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